요즘 오후 두세 시쯤, 혹은 퇴근 무렵이 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수천 명이 한꺼번에 절에 들어가 방석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습니다. 회사 책상 앞에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침대에 누운 채로요. 스레드와 인스타그램에서 입소문을 탄 온라인 절 ‘산사’ 이야기입니다.

접속하면 나는 이름표를 단 동자승

산사는 따로 프로그램을 깔거나 가입할 필요 없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사이트에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들어서면 ‘느린 발걸음’, ‘고요한 구름’, ‘다정한 나무’처럼 이름표가 붙은 동자승 캐릭터가 하나 주어지고, 등불이 켜진 돌길을 따라 법당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등불이 켜진 돌길을 따라 법당으로 걸어가는 동자승 캐릭터들
법당으로 가는 길. 앞에 다른 사람의 동자승도 걸어갑니다.

법당 안에서는 방석에 앉아 합장하고 절을 올리거나, 손가락으로 염주를 굴릴 수 있습니다. ‘염불 듣기’를 누르면 목탁 소리와 반야심경이 흘러나오고, 굴린 염주 수는 화면 구석에 차곡차곡 세어집니다. 방석 하나에는 한 사람만 앉을 수 있습니다.

법당 안 방석 사이를 걷는 동자승 캐릭터

합석은 되는데, 말은 못 걸어요

산사의 가장 큰 특징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같은 법당에 여러 사람이 함께 있지만 채팅이나 메시지 기능은 아예 없습니다. 누군가 합장하면 ‘합장으로 인사했어요’라는 알림이 뜨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개발자는 서비스를 소개하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합석은 되는데 말은 못 걸어요.” 그리고 “절 한 번 하고 염주 조금 굴리다가 나와도 된다. 절까지 갈 기운 없는 분들, 여기서 잠깐 앉아 있다 가라”고 덧붙였습니다.

방석 20개로 시작해 사흘 동안 60만 명

처음엔 방석 스무 개짜리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개 하루 만에 약 1만 2천 명이 몰려 서버가 멈췄고, 개발자가 자리를 100명, 1천2백 명 규모로 늘려도 모자라 결국 1만 명이 들어갈 수 있게 넓혔습니다. 지금은 서버 100개 가운데 원하는 곳을 골라 들어가는데, 인기 있는 서버는 100명 정원이 꽉 찰 정도입니다.

청연당 서버 목록 화면, 서버 1은 99/100명
서버 목록. 표시된 인원은 실제 방문객 수입니다.

하루 방문자는 이틀 만에 1만 2천여 명에서 10만 명으로 늘었고, 개발자는 3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근 사흘간 60만 명이 다녀갔다”고 밝혔습니다. 자리가 모자라 ‘법당 웨이팅’까지 생겼다고 하니, 절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온라인에서 벌어진 셈입니다.

만든 사람은 스물여섯 살 취준생

산사를 만든 사람은 ‘메타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스물여섯 살 박진원 씨입니다. 취업을 준비하던 그는 AI를 활용한 바이브 코딩으로 이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이유는 소박했습니다. 절에 가서 잠깐 쉬고 싶었지만 취준생이라 절까지 갈 시간도, 기운도 없었다는 겁니다. 그는 “사실 나 혼자 쓸 생각도 하고 만들었는데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귀여운 동자승 캐릭터는 어린 조카를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합니다.

성당, 교회, 그리고 클럽까지

산사가 화제가 되자 비슷한 공간이 줄줄이 문을 열었습니다. 명동성당을 모티브로 한 온라인 성당은 고해성사와 미사포 기능까지 넣었고, 크리스마스 예배당 콘셉트의 온라인 교회도 생겼습니다. 종교 시설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낚시터, 사우나, 캠핑장,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옥상 클럽, 우주를 배경으로 한 공간까지 등장했습니다.

촛불이 놓인 빨간 카펫과 캐릭터들이 앉아 있는 온라인 성당
온라인 성당
네온 조명이 켜진 옥상 클럽 가상 공간
한강뷰 옥상 클럽

말 없이 같이 있는 위로

대화도 경쟁도 없고,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것도 없는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용자들은 “진짜 고요하고 좋다”, “덕분에 방구석에 누워 108배도 하고 힐링한다”, “종일 몇 번씩 드나들며 수행한다”는 반응을 남기고 있습니다. 젊은 층 사이에서 불교 문화를 가볍고 친근하게 즐기는 이른바 ‘힙불교’ 흐름과 맞물렸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어쩌면 답은 산사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한 줄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말없이 같이 앉아 있는 온라인 절.’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아도 누군가 옆에 같이 앉아 있다는 것, 그게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위로였나 봅니다. 오늘 오후 잠깐 숨이 막힌다면, 산사에 들러 방석 하나를 차지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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