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더 싼 요금제로 바꿔 달라고 부탁하면, 잠시 뒤 "통화 끝! 지금보다 월 4만 2천 원 아끼고 위약금도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요즘 입소문을 타고 있는 AI 앱 '피클(Pickle)'의 소개 화면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피클은 질문에 답만 하는 챗봇이 아니라, 사람 대신 전화를 걸고 기차표를 예매하고 물건을 주문하는 'AI 에이전트'입니다. 아직은 초대를 받아야 쓸 수 있는 베타 단계지만, 써 보기 전에 무엇을 맡길 수 있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정리했습니다.

기존 AI 챗봇에게 KTX 예매를 물으면 예매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데서 끝납니다. 피클은 자체 클라우드 브라우저로 코레일 같은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 사용자가 연결해 둔 계정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 창업자들이 세운 스타트업이 만들었고, 10월 한국에서 아이폰용 베타를 연 뒤 앱스토어 순위가 며칠 사이에 빠르게 올랐습니다. 비서 역할을 하는 피클은 색과 모양이 제각각인 말랑한 캐릭터로 등장하고, 소개 화면에는 '치즈모찌'처럼 이름이 붙은 피클도 나옵니다.
피클한테 맡길 수 있는 일
가장 눈에 띄는 건 전화입니다. 통신사 고객센터에 대신 전화해 요금제를 바꾸거나 환불을 요청하고, 통화가 끝나면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정리해 알려 줍니다. 기차표도 맡길 수 있습니다.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말하면 KTX를 예매해 주고, 표가 매진이면 취소표가 나오는지 지켜보다가 알려 줍니다. 식당이나 병원 예약, 쿠팡·다이소몰에서 물건을 찾아 주문하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연결할 수 있는 서비스 목록에는 네이버, 지메일, 구글 캘린더, 정부24, 코레일, 캐치테이블, 요기요 같은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가장 신기한 기능은 피클끼리의 대화입니다. 친구와 이번 주말 등산 약속을 잡아 달라고 하면, 내 피클이 친구의 피클에게 말을 걸어 서로 비는 시간을 맞추고 산행 뒤 들를 식당 후보까지 고릅니다. 사람 둘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날짜를 맞추던 일을 AI 둘이 대신하는 셈입니다. 두 피클이 나눈 대화는 사용자가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써 보기 전에 알아둘 것
결제나 예약처럼 중요한 일은 피클이 혼자 끝내지 않고, 진행하기 전에 사용자에게 승인을 받습니다. 먼저 써 본 사람들의 후기에서도 결제 직전에 승인 요청이 와서 금액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 쓸 때는 이 승인 알림이 올 때마다 금액과 내용을 꼭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앱은 무료로 받을 수 있고, 하루 사용 한도 안에서 무료로 씁니다. 한도는 매일 새벽에 다시 채워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도를 다 쓰면 다음 날을 기다리거나, 11월 초 앱스토어 기준으로 2,900원부터 파는 한도 초기화 티켓이나 월 15,000원짜리 '피클 플러스'를 쓰면 됩니다. 물건값이나 배달비처럼 다른 업체에 내는 돈은 당연히 따로 듭니다.
편한 만큼 맡기는 정보도 많아집니다. 네이버나 메일, 쇼핑 계정을 연결할수록 피클이 대신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지만, 그만큼 내 정보가 많이 오가게 됩니다. 앱스토어의 개인정보 항목에도 위치, 연락처, 구입 내역 같은 정보가 사용자와 연결되는 데이터로 표시돼 있습니다. 처음에는 개인 계정 몇 개만 연결하고, 회사 계정이나 법인카드는 연결하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아직은 못 하는 일
세탁물을 맡기거나 택배를 부치는 일처럼 사람의 몸이 움직여야 하는 일은 맡길 수 없습니다. 연결된 서비스 밖의 일도 어렵습니다. 10월 말 한 사용 후기에 따르면 배달은 연결된 앱이 요기요 하나뿐이라, 평소 쓰던 다른 배달앱의 멤버십이나 쿠폰은 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가입도 아직은 초대 링크가 있어야 하고, 처음에는 iOS 17 이상 아이폰용으로 나왔습니다. 안드로이드 버전은 이제 막 출시 소식이 나오는 단계라, 받을 때는 개발사가 Pickle Company인지 꼭 확인하고 비공식 설치 파일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피클은 AI가 대답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 주는 앱입니다. 초대를 받았다면 처음부터 큰일을 맡기기보다 기차표 예매나 밀린 쇼핑 리뷰처럼 작은 심부름부터 시켜 보세요. 어디까지 믿고 맡길 수 있을지는 그렇게 몇 번 써 보면 감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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