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터넷은 1982년 5월, 한 사람의 고집에서 시작됐습니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입니다.

그는 1943년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교포로 태어났습니다. 1965년 오사카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갔습니다. 유학의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기보다 한국에 가기 위해 미국에서 공부를 했던 것이다." 부모는 한국행을 반대했습니다.

UCLA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쳤습니다. 지도교수는 인터넷의 원조인 아르파넷을 이끈 레너드 클라인록이었습니다. 인터넷이 태어나는 현장 바로 옆에 있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아르파넷 연구에는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록웰과 NASA 제트추진연구소를 거친 뒤, 1979년 정부의 해외 과학자 유치로 귀국해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에 들어갔습니다.

1982년 구미 연구실을 재구성한 일러스트
1982년 구미 연구실을 재구성한 일러스트

정부가 그에게 맡긴 일은 수출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980년 그가 낸 컴퓨터 네트워크 계획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반려되었습니다. 그는 1981년 같은 계획을 다시 제출했고, 이번에는 승인을 받았습니다.

승인 뒤에도 길은 막혔습니다. 미국은 보안을 이유로 네트워크 연결 장비인 라우터의 판매를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소프트웨어를 고쳐 국산 16비트 컴퓨터에 얹는 방식으로 라우터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1982년 5월,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의 컴퓨터가 연결되었습니다. 회선 속도는 초당 150글자 정도였습니다. 미국과 유럽 밖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방식(TCP/IP)을 쓴 네트워크였습니다.

1986년 한국은 .kr 도메인을 열었습니다. 그는 KAIST에서 26년을 가르쳤고, 허진호 등 제자들이 한국 인터넷 산업의 1세대를 이끌었습니다. 2012년에는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공로보다 실수를 먼저 말했습니다. 보급에만 집중하고 안전을 소홀히 한 것이 자신의 실수였다고 인정했습니다. "인터넷 보안이 형편없다.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다."

한국에 가기 위해 미국에서 공부했던 재일교포 청년은, 그렇게 한국을 인터넷에 연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