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전쟁은 수많은 이들을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그중 많은 이들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들을 찾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입니다.

유해함에 태극기를 덮는 장병 일러스트
이해를 돕기 위한 재현 일러스트

1만 1,500구, 그리고 280명

2000년 유해발굴이 시작된 뒤 이 땅에서 수습한 6·25 전사자 유해는 약 1만 1,500구입니다. 그러나 이름을 되찾아 가족 곁으로 모신 분은 약 280명에 그칩니다.

함께 묻힌 인식표나 유품이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어, 가족의 DNA와 대조해야만 누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억을 간직한 자녀 세대는 이제 여든, 아흔을 넘기고 있습니다.

땅만 살피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감식단은 땅만 살피지 않습니다. 옛 군 기록과 주소, 족보를 한 장씩 넘기며 유가족을 찾아 나섭니다. 올봄에는 제주를 찾아 닷새 동안 유가족 시료 403건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기술도 길을 넓혔습니다. 차세대 유전자 분석으로 이제는 친가·외가 8촌까지도 DNA를 대조할 수 있게 되었고, 10여 년 전 확인에 실패했던 횡성 전투 전사자들의 이름도 다시 찾았습니다.

70년 만의 재회

2020년, 이분애 할머니는 70년 만에 남편 김진구 하사를 다시 맞이했습니다.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남편에게는 묻힐 곳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유골을 뿌려 달라고 했었습니다. 이제 할머니는 남편 곁에 묻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남겨 둔 동생의 DNA로 형의 이름을 찾은 삼형제도 있습니다. 6·25 때 전사한 고 전병섭 하사는 동생 전병철 씨가 생전에 남긴 시료 덕분에 신원이 확인되어,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든 동생 전병화 상사 곁에 나란히 묻혔습니다.

끝나지 않은 귀환

이분애 할머니처럼 기다려 온 가족이 아직 많습니다. 그리고 이름 없이 가족을 기다리는 1만 1천여 분이 계십니다.

집안에 6·25 때 돌아오지 못한 분이 계신다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알려 주십시오. 그분이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