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4일은 가갸날 100주년입니다. 꼭 100년 전인 1926년 11월 4일,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는 서울 식도원에서 훈민정음 반포 480년을 기리는 축하회를 열고 이날을 '가갸날'로 정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10월 9일에 쉬는 한글날의 시작입니다. 이 자리를 만든 사람들은 국어학자 주시경의 제자들이었고, 정작 주시경은 12년 전 세상을 떠나 이날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갸날'이라는 이름은 한글을 처음 배울 때 소리 내어 외우던 '가, 갸, 거, 겨'에서 왔습니다. 날짜는 『세종실록』 1446년 음력 9월에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고 적힌 기록을 근거로, 그달의 끝날인 음력 9월 29일에 맞췄습니다. 그날 아침 동아일보 5면에는 '한글의 새로운빗 오늘이 가갸날'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책 보따리를 든 선생님, 주시경
주시경은 1876년 12월 22일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배재학당에 다니던 1896년,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에서 일하게 됐는데, 기사마다 같은 말을 다르게 적는 모습을 보고 신문사 안에 '국문동식회'를 꾸려 한글 표기를 하나로 맞추는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책 보따리를 들고 서울 시내 여러 학교와 강습소를 쉬지 않고 오가며 우리말을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주보따리'라고 불렀습니다. 1910년 『국어문법』을, 1914년 4월에는 우리말 소리를 우리말 용어로 풀어 쓴 『말의 소리』를 펴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우리말 사전 '말모이'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말의 소리』를 낸 지 석 달 뒤인 1914년 7월 27일 만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끝내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스승이 떠난 뒤, 제자들이 연 가갸날
주시경이 가르친 강습소의 명단에는 550여 명의 강습생이 올라 있고, 그 가운데 최현배, 권덕규, 장지영 같은 이름이 있습니다. 이렇게 주시경에게 배운 제자들이 중심이 된 조선어연구회(뒤의 조선어학회, 지금의 한글학회)가 스승이 떠나고 12년 뒤 첫 가갸날을 열었습니다. 일제가 우리말을 밀어내던 때, 한글이 태어난 날을 기념하자는 것은 우리말을 지키자는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가갸날은 1928년부터 '한글날'로 불렸습니다. 날짜도 몇 번 바뀌었습니다. 음력을 양력으로 옮기는 방식에 따라 10월 29일, 10월 28일로 행사를 열다가,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반포 시기가 '9월 상순'으로 밝혀졌고, 광복 뒤 이를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이 지금의 한글날로 자리 잡았습니다. 해례본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는 기와집 열 채 값으로 되찾은 한글의 진짜 생일에 자세히 담았습니다.
주시경이 끝내지 못한 사전의 꿈도 제자들이 이어받았습니다. 조선어학회가 모은 우리말 사전 원고는 일제의 탄압 속에 사라졌다가 광복 직후 당시 경성역, 지금의 서울역 창고에서 다시 발견됐습니다. 그 이야기는 경성역 창고의 상자 하나가 지킨 우리말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올해는 주시경이 태어난 지 1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10월 그의 발자취를 담은 기념우표를 내놓았습니다. 2026년 11월 4일, 가갸날 100주년에는 한글날을 처음 만든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보따리 하나 들고 학교를 오가던 선생님과, 그 뜻을 잊지 않았던 제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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