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글날 경축식에서 다시 소환된 장면이 있습니다. 1945년 9월, 해방 직후의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입니다. 갈 곳 없는 화물을 정리하던 역장이 수취인이 '고등법원'으로 적힌 상자 하나 앞에서 멈춰 섭니다. 상자 안에는 원고지 2만 6,500여 장이 빼곡히 들어 있었습니다. 3년 전 일본 경찰이 빼앗아 간 우리말 사전 원고였습니다.
사전 하나에 15년을 걸다
이야기는 1929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조선어사전편찬회'가 꾸려졌습니다. 사전을 만들려면 먼저 표기 기준이 필요했기에,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1936년 표준어 모음이 차례로 나왔습니다. 이극로, 이윤재, 한징, 정인승 같은 편찬원들이 낱말을 모으고 풀이를 달았습니다.
1942년 봄에는 원고 일부가 인쇄소로 넘어갔고, 여름에는 200여 쪽이 조판돼 교정까지 들어갔습니다. 사전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이었습니다.

사전을 만든 것이 죄가 되다
1942년 10월,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집니다. 학자들이 줄줄이 검거됐고 사전 원고는 증거물로 압수됐습니다. 함흥 재판에서 일제 법원은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을 조선 민족정신을 유지하려는 민족운동으로 규정하고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낱말을 모으고 뜻을 풀이한 일이 처벌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이윤재, 한징 두 학자는 혹독한 고문 끝에 옥중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상고가 기각되자 원고는 재판 증거물로 서울 고등법원 앞으로 보내졌고, 그대로 창고에 방치됐습니다.
창고 속 상자, 그리고 28년

해방 직후 함흥 감옥에서 풀려난 학자들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이 바로 이 원고였습니다. 원고를 찾지 못하면 십수 년의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경성역 창고의 상자가 학회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되찾은 원고로 1947년 한글날 『조선말 큰사전』 첫 권이 나왔습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권은 1957년 10월 9일에 나왔습니다. 편찬회가 꾸려진 지 꼬박 28년 만이었습니다.
이 원고는 주시경 등이 1911년부터 만들던 최초의 사전 원고 '말모이'와 함께 '근대 한국어 사전 원고'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습니다. 최종 결정은 2027년 상반기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내려집니다.
100년 전엔 숨겨서 지킨 말
올해는 1926년 '가갸날'로 한글날을 처음 만든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올해 경축사에서 정부는 세종학당을 2007년 13곳에서 올해 273곳까지 늘렸고, 2030년까지 350곳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공지능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 쓰는 말뭉치도 174종에서 2030년 340종으로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100년 전 우리말은 숨겨서라도 지켜야 하는 말이었습니다. 지금은 세계가 배우는 말이 됐고, AI에게 가르쳐야 할 말이 됐습니다. 창고 속 상자 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은 역장의 손길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사전을 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켜낸 말을 이제 어떻게 넓혀 갈지가 우리 몫으로 남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