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계절이 깊은 가을로 접어들 때, 지구 반대편 호주는 찬란한 봄을 맞이한다. 이 시기 시드니를 찾는 여행자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것은 바로 자카란다(Jacaranda)다. 따뜻한 볕을 따라 피어나는 자카란다는 10월과 11월 사이 도심의 거리와 공원, 유서 깊은 대학 캠퍼스를 온통 연보랏빛으로 물들이며 시드니만의 독보적인 계절 풍경을 완성한다.
고개를 들면 보랏빛 꽃송이 사이로 맑은 하늘이 비치고, 발밑에는 떨어진 꽃잎들이 폭신한 융단처럼 깔린다. 1년에 단 몇 주 동안만 허락되는 이 화사한 계절을 보기 위해 수많은 여행자가 시드니로 향한다.

시드니에서는 도심 명소를 따라 여유롭게 걷는 도보 코스가 제격이다. 시드니 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 Sydney)에서 발걸음을 떼어 서큘러 키(Circular Quay)와 더 록스(The Rocks)로 이어지는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현대적인 고층 빌딩과 역사적인 건물 사이에 자리 잡은 자카란다를 만날 수 있다. 호주현대미술관과 페리 부두 인근의 퍼스트 플리트 파크는 시드니 하버 브리지와 오페라 하우스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활짝 핀 보랏빛 나무를 한 화폭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포토 스폿이다.


조금 더 드라마틱한 꽃 터널을 원한다면 시드니 북쪽 해안의 키리빌리(Kirribilli)로 향하면 된다. 특히 맥두걸 스트리트(McDougall Street)는 양옆으로 자란 자카란다가 머리 위에서 맞닿으며 환상적인 아치 터널을 만들어낸다. 평온했던 주택가가 10월이면 동화 속 한 장면으로 변모해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시드니 동부의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패딩턴(Paddington)이 정답이다. 옥스퍼드 스트리트의 빅토리아 배럭스 잔디밭은 돌담을 따라 늘어선 자카란다 꽃잎으로 가득 덮인다. 꽃구경 후에는 글렌모어 로드와 파이브 웨이스로 이어지는 골목을 따라 감각적인 갤러리와 디자이너 부티크를 둘러보고, 울라라와 더블 베이의 여유로운 카페 거리까지 산책을 넓혀가기 좋다.

학구적인 분위기와 고풍스러운 석조 건축이 어우러진 시드니대학교(The University of Sydney)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학 중정에는 88년간 자리를 지키다 지난 2016년 쓰러진 상징적인 자카란다를 복제한 나무와 호주 원주민을 기리는 토종 플레임트리가 나란히 자라고 있다. 앤더슨 스튜어트 빌딩과 피직스 로드 주변에 늘어선 고목들이 중세풍 캠퍼스 건물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정취를 자아낸다.
자카란다의 진수를 경험하고 싶다면 뉴사우스웨일즈주 북부의 그래프턴(Grafton)으로 떠나는 여정을 추천한다. 마을 전체에 2,000그루가 넘는 자카란다가 군락을 이루는 이곳에서는 매년 봄 '그래프턴 자카란다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꽃 축제 중 하나로 거리 퍼레이드와 마켓, 불꽃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가 도시 전체를 축제의 열기로 채운다.

자카란다가 연보랏빛으로 문을 여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의 봄은 센트럴코스트와 헌터밸리, 블루마운틴, 서던 하이랜드의 튤립과 야생화로 이어지며 계절의 깊이를 더해간다. 도시와 자연이 가장 찬란한 색채로 옷을 갈아입는 10월, 호주의 봄길을 걷는 일은 그 자체로 잊지 못할 여정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