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줄러 화면에는 사흘 내내 "정상 실행"이 찍혀 있었다. 블로그에는 사흘 동안 글이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로그를 거꾸로 따라가 보니 AI는 매일 새벽 정해진 시각에 깨어나 초안까지 다 썼다. 발행 직전, 판단이 애매한 지점에서 사람의 대답을 기다리며 멈춰 있었다. 사람은 자고 있었다.
그때 프롬프트를 아무리 다듬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지시문은 훌륭했다. 빠진 건 "애매하면 어떻게 하라"는 판단이었다. AI에게 일을 맡길 때 제일 먼저 만들어야 할 것은 문장이 아니라 일하는 체계였다.
대기업도 AI를 직원처럼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번 주 SK텔레콤이 첫 「AI 거버넌스 리포트」를 냈다. 10월 26일 뉴스룸 발표를 보면 사내 업무에 쓰는 AI 에이전트를 개발·테스트·운영·종료 단계마다 같은 기준으로 관리한다. 이달에는 사내 AI 에이전트 관리체계로 인증도 받았다. 스스로 판단하고 일하는 AI를 도구가 아니라 관리 대상 인력으로 본다는 선언이다.
1인 사업자나 작은 마케팅팀에 거버넌스 보고서는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내 생각은 다르다. 규모만 다를 뿐 질문은 같다. 이 AI는 무슨 일을 맡았나, 언제 일하나, 애매할 때 무엇을 택하나, 언제 그만 쓰나. 대기업은 이걸 보고서로 쓰고 혼자 일하는 마케터는 지시문 파일 한 장에 쓴다. 이 지침이 없으면 AI를 몇 개 붙여도 매번 업무를 새로 설명해줘야하는 어리버리한 신입사원 여러 명을 둔 셈이다.
그리고 규모가 작은 기업이거나 1인 기업일수록 마케팅에 AI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섣불리 사람 채용을 늘릴 수 없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일수록 AI를 적극 활용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첫 번째 착각: 제일 좋은 AI 하나를 고르면 된다
강의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그래서 어떤 AI를 써야 하나요"다. 내 답은 늘 같다. 하나만 고르지 마라. 여러 도구를 써보고 테스트하고 경쟁시켜라.
세 도구를 몇 주 동안 실전에 나란히 붙여 보니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다른 일을 하는 팀원에 가까웠다.
제미나이는 빠른 대화와 이미지 초안에 강했다. 자주 쓰는 설정을 Gems에 등록해 두면 반복 확인이 편하다. 제미나이 노트북은 내가 올린 자료 안에서만 답한다. 버전이 여러 개로 흩어진 제품소개서와 회의록을 넣고 "시장 규모 추정치가 문서마다 다른데 뭐가 최신이냐"고 물으면 출처를 짚어 답한다. 새 정보를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있는 정보를 흩어지지 않게 잡는 도구다. 클로드 CLI는 대화가 아니라 실행을 맡는다. 파일을 읽고 쓰고, 외부 서비스에 연결하고, 정해진 시각에 스스로 다시 일한다.

한 가지 더 배웠다. 같은 모델이라도 채팅창으로 쓸 때와 API로 부를 때 결과가 다르다. 캐릭터 이미지를 만들며 설정을 글로 옮겨 적어 채팅창에 넣으면 모델이 설명을 상상해서 그렸다. 매번 얼굴이 달라졌다. 참조 이미지 파일을 직접 붙여 API로 요청하자 훨씬 일관된 결과가 나왔다. 한두 번 쓰고 끝날 일은 채팅창으로 충분하다. 매주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 일은 API나 실행형 도구로 옮긴다.
두 번째 착각: 좋은 프롬프트가 좋은 결과를 낸다
좋은 카피 한 줄보다 그 카피가 매주 나오게 하는 구조가 중요하다. 강의 첫 시간마다 하는 말인데 AI가 들어오면서 더 정확해졌다. 좋은 프롬프트를 한 번 쓰는 일과 그 프롬프트가 매주 같은 품질로 돌게 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여러 채널을 돌리며 만든 체계는 세 칸이다. 첫째는 반복 가능한 지시문이다. 채널마다 순서·톤·분량·금지사항을 문서 한 장으로 고정한다. 소재만 바뀌고 틀은 그대로라 품질이 들쭉날쭉하지 않다. 둘째는 실행 주기다. 내 블로그 초안은 평일 새벽 5시 30분에 지시문 파일을 읽고 스스로 시작한다. 콘텐츠가 생각날 때 하는 일에서 저절로 굴러가는 일로 바뀐다. 셋째가 안전한 기본값이다. 셋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첫 장면에서 내가 빠뜨린 칸이다.

세 번째 착각: 무인 자동화에도 사람 승인이 늘 필요하다
사흘 정지 사고 뒤 원칙을 하나 세웠다. 무인 실행 중에는 사람에게 되묻지 않는다. 애매하면 가장 보수적인 선택, 대개는 그 항목을 건너뛰는 쪽을 스스로 택하고 끝까지 완료한다. 이미지 생성이 실패하면 이미지 없이 간다. 저장 권한이 애매하면 정해 둔 폴더에만 쓴다.
사람을 빼라는 말이 아니다. 사람이 볼 자리를 실행 도중이 아니라 앞뒤로 옮기라는 말이다. 기본값은 사람이 미리 정하고, 결과는 사람이 나중에 본다. 이 원칙을 문서에 못박은 뒤로 같은 유형의 사고는 다시 나지 않았다. 처음엔 매일 아침 발행 여부를 직접 확인했다. 지금은 이상이 있을 때만 알림이 온다.
제작 단계마다 맡길 AI가 다르다
역할 분담을 콘텐츠 제작 단계에 맞추면 표 하나가 나온다. 소재 리서치는 웹 검색이 붙은 대화형 AI, 초안은 원칙 문서를 기억하고 반복하는 실행형 AI, 사실 검증은 내 자료 안에서만 답하는 문서 기반 AI가 맡는다. 이미지는 참조 이미지를 붙일 수 있는 생성 AI로 가되 API 경로를 우선한다. 발행과 성과 분석은 파일·일정·외부 서비스를 직접 다루는 실행형 AI에 맡긴다.

도구 이름은 계속 바뀐다. 이름보다 성격으로 기억하는 편이 오래 간다. 비용도 단계마다 따로 본다. 텍스트 작업은 대부분 무료나 저렴한 선에서 끝난다. 생성할 때마다 돈이 드는 이미지·영상만 결제를 검토한다. 나는 이미지를 무료인 Hugging Face로 시작했다. 결과물의 임팩트가 중요해진 채널에만 소액 종량제인 fal.ai로 옮겼다. 결제를 걸 때는 사용량 상한을 코드에 같이 건다.
구글 워크스페이스를 유료로 쓰는 팀은 한 가지를 미리 알아 두면 좋다. 그 정액 요금에 나노바나나 이미지 모델의 API 사용료는 들어 있지 않다. API로 쓰려면 개발자용 결제를 따로 등록해야 한다.
같은 AI에게 자기 글을 검토시키지 않는다
역할을 나눈 다음 한 칸을 더 얹었다. 서로 다른 AI 둘을 맞세우는 교차 검증이다. 내 책 원고도 이렇게 만들었다. 클로드로 쓰고, 그 결과를 통째로 제미나이 새 대화창에 넘겨 출간 전 편집자 입장에서 읽게 했다. "시각 자료 위치가 비어 있다", "파트 사이 도입부가 없다", "용어 사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지적을 다시 클로드에게 넘겨 고쳤다.
같은 클로드에게 "다시 봐 줘"라고 해도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해 보면 다르다. 자기가 세운 논리와 문체에 익숙해진 모델은 허점을 잘 못 찾는다. 다른 회사가 다른 방식으로 학습시킨 모델은 처음 보는 독자에 가깝게 읽는다. 지시를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단점이 검토에서는 장점이 된다.

검토하는 AI의 지적도 그대로 베끼지 않는다. 다섯 개 가운데 방향에 맞지 않는 게 섞이면 사람이 골라낸다. 최종 판단은 여전히 사람 몫이다.
이번 주에 해 볼 다섯 가지
- 조사·초안·검증·이미지·발행·분석 여섯 단계를 적고, 지금 쓰는 도구를 칸마다 하나씩 넣는다. 한 도구가 네 칸 이상 차지하면 하나를 다른 도구로 옮긴다.
- 매주 반복하는 일 하나를 골라 순서·톤·분량·금지사항을 지시문 한 장으로 적는다.
- 그 일을 돌릴 요일과 시각을 정한다.
- 지시문 맨 아래에 "애매하면 이렇게 한다" 세 줄을 쓴다. 이미지 실패, 자료 없음, 저장 위치가 애매할 때를 하나씩.
- 밖으로 나가면 되돌리기 어려운 글 한 편을 골라 다른 AI 새 대화창에 편집자 역할로 검토시킨다.
업무체계가 해 주지 않는 것
체계는 품질의 바닥을 받쳐 줄 뿐, 글을 좋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지시문이 평범하면 평범한 글이 매주 정확하게 나온다. 교차 검증은 시간을 두 배로 쓴다. 매일 쏟아지는 짧은 SNS 글까지 이렇게 하면 남는 게 없다. 책·제안서·브랜드 대표 콘텐츠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것에만 쓴다. 사흘 정지 뒤 재발이 없다는 말도 같은 유형에 한한다. 자동화는 다른 이유로 또 멈춘다. 그래서 상태를 한 화면에 모으는 칸이 따로 필요하다. 나는 노션 데이터베이스에 채널별 발행 상태를 AI가 채우게 해 두었다. API 키는 노션에 절대 올리지 않는다.
그래도 순서는 분명하다. 도구를 고르기 전에 일을 단계로 쪼갠다. 프롬프트를 다듬기 전에 기본값을 적는다. AI를 늘리기 전에 각자 맡을 칸을 정한다. AI 직원을 몇 명 두든 팀장이 할 일은 역할표를 쓰는 일이다.
이 글의 바탕이 된 책
이 글은 《나는 AI를 마케팅팀장으로 앉혔다》 4장 「AI 직원에게 역할을 나눠라」, 5장 「프롬프트가 아니라 업무체계를 만들어라」, 15장 「일을 AI에게 나누는 법」을 바탕으로 썼다. 책에는 한 번짜리 요청을 반복 구조로 바꾸는 프롬프트, 클로드 CLI 핵심 명령어 10가지, 사흘 정지 사고의 전말(9장)까지 담았다.
마케팅 연재 다음 편에서는 링크드인 한 채널에 힘을 몰아준 이유를 다룬다.
함께 보면 좋은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