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3년, 울릉도에서 고기를 잡던 조선 어부 안용복은 일본 어민과 부딪쳐 일본으로 끌려갑니다. 동래 수군에서 노를 젓던 능로군이었고, 부산 왜관을 드나들어 일본어를 잘했던 사람입니다.

담판의 시작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울릉도가 누구의 땅인지를 두고 외교 담판이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 1696년 1월 28일, 에도 막부는 일본인이 울릉도로 건너가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대마도가 이 결정을 조선에 알린 것은 이듬해인 1697년 1월이었습니다.
다시 바다로
1696년 봄, 안용복은 다시 울릉도로 향합니다. 『숙종실록』에 남은 그의 진술에 따르면, 울릉도에서 만난 일본 어민이 송도(松島)에 산다고 하자 그는 "송도는 곧 자산도이고, 그 또한 우리 땅"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튿날 자산도(독도)까지 쫓아간 그는 일본 오키섬을 거쳐 호키주로 건너가, 스스로 '울릉·자산 양도 감세장'이라 칭하며 일본 어민의 침범에 항의했습니다.
흔히 이 두 번째 도일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다고 알려져 있지만, 막부의 도해 금지 결정은 그보다 앞선 1696년 1월에 이미 내려져 있었습니다. 또 그가 막부에게서 울릉도가 조선 땅이라는 문서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본인의 진술로만 전하며, 일본 기록에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공은 있으나 벌을 받다
나라가 보낸 사람이 아니었기에, 돌아온 그는 허락 없이 국경을 넘은 죄로 사형까지 논의되었다가 유배형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그 뒤의 행적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훗날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공이 있는데도 벌을 받은 그를 안타까워했고, 18세기 이후 그는 독도를 지킨 인물로 다시 조명되었습니다.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