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요태 빽가(본명 백성현)가 광복절을 맞아 공개한 외증조부 경림(景林) 진희창(陳熙昌) 선생의 독립운동 이야기와 고백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빽가는 20년 넘게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멤버들에게조차 외증조부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습니다. 생전 어머니로부터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긍지를 갖고 기죽지 말라"는 말을 듣고 자랐으나, 조상의 업적에 편승하거나 자랑거리로 비칠까 조심스러워 방송과 유튜브에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빽가언니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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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광복절에 이 사연을 처음 꺼낸 이유는 생활 형편이 어려운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직접 돕기 위해서입니다. 과거에는 여력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에 도움이 필요한 후손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고자 제작진과 함께 도움의 창구를 열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진희창 선생의 삶과 독립운동

1874년 서울 종로구 인의동에서 태어난 진희창 선생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이듬해인 1911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영국계 상하이 전차회사 감독으로 일하며, 일제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로 건너오는 독립투사들에게 거처와 군자금을 마련해 주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비밀리에 수행했습니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과정에서 이동녕, 신익희 선생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참여하여 국호 대한민국 제정과 민주공화제 헌장 제정에 힘을 보탰습니다.

1920년 교민 자치 조직인 상하이 대한인거류민단 의사원으로 활동하며 교민 대상 인구세를 징수해 임시정부 재정을 보태고, 민성학교와 의경대 등 교민 사회 인프라를 운영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를 통해 상하이에서 끼니를 잇기 어려웠던 시절 진희창 등 가까운 동지들이 눈치를 주지 않고 따뜻한 밥과 거처를 내어주었다고 직접 기록을 남겼습니다.

1926년 7월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조직하고 재무위원으로 활동하며 극심한 재정난에 처한 임시정부를 지켜냈습니다. 독립공채 발행과 모금을 통해 상하이 마당로 보경리 4호 청사(현재의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마련하고 이전 비용을 전액 뒷받침했습니다.

총과 폭탄 대신 묵묵히 밥과 자금, 청사를 책임지며 임시정부의 숨을 이어가던 진희창 선생은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33년 2월 9일 상하이에서 순국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