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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을 받을 줄 알면서도 "독도는 조선 땅" 외친 어부, 안용복
- URL: https://www.sharehows.com/an-yong-bok-dokdo/
- Published: 2026-10-16T14:39:20.000Z
- Updated: 2026-10-16T14:39:20.000Z
- Description: 1693년 일본으로 끌려갔던 조선 어부 안용복. 1696년 다시 바다로 나가 울릉도와 자산도(독도)가 조선 땅이라고 항의했고, 돌아와서는 국경을 넘은 죄로 유배를 갔습니다.
- Author: 쉐어하우스
- Tags: 역사

1693년, 울릉도에서 고기를 잡던 조선 어부 안용복은 일본 어민과 부딪쳐 일본으로 끌려갑니다. 동래 수군에서 노를 젓던 능로군이었고, 부산 왜관을 드나들어 일본어를 잘했던 사람입니다.

![조선 어부 일러스트](https://www.sharehows.com/content/images/2026/10/2026-10-16_---------_blog-1.jpg)

이해를 돕기 위한 재현 일러스트

## 담판의 시작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울릉도가 누구의 땅인지를 두고 외교 담판이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 1696년 1월 28일, 에도 막부는 일본인이 울릉도로 건너가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대마도가 이 결정을 조선에 알린 것은 이듬해인 1697년 1월이었습니다.

## 다시 바다로

1696년 봄, 안용복은 다시 울릉도로 향합니다. 『숙종실록』에 남은 그의 진술에 따르면, 울릉도에서 만난 일본 어민이 송도(松島)에 산다고 하자 그는 "송도는 곧 자산도이고, 그 또한 우리 땅"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튿날 자산도(독도)까지 쫓아간 그는 일본 오키섬을 거쳐 호키주로 건너가, 스스로 '울릉·자산 양도 감세장'이라 칭하며 일본 어민의 침범에 항의했습니다.

흔히 이 두 번째 도일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다고 알려져 있지만, 막부의 도해 금지 결정은 그보다 앞선 1696년 1월에 이미 내려져 있었습니다. 또 그가 막부에게서 울릉도가 조선 땅이라는 문서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본인의 진술로만 전하며, 일본 기록에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 공은 있으나 벌을 받다

나라가 보낸 사람이 아니었기에, 돌아온 그는 허락 없이 국경을 넘은 죄로 사형까지 논의되었다가 유배형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그 뒤의 행적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훗날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공이 있는데도 벌을 받은 그를 안타까워했고, 18세기 이후 그는 독도를 지킨 인물로 다시 조명되었습니다.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입니다.